오늘은 창조론의 과학이야기에 대해서 포스팅해보겠습니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으로 과학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었지만 역사 속에서 진화의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앰페도클레스는 생명이 계속해서 모습을 바꾼다는 생각을 세상에 퍼뜨렸고, 기원전 50년에는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가 모든 생물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논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범한 생각들은 기독교 교회의 억압을 받았습니다. 그뒤로 거의 1300년 가까이 유럽에서는 창세기를 통해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설명하는 풍조가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신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1700년대 중반에 유럽의 지식인들은 창세기가 지구의 역사를 설명한다는 생각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윈이 세상을 뜬 1882년에 이르렀을 땐 생명이 진화한다는 사실이 과학계와 지식층에서 더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지금처럼 진화를 집요하게 반대하진 않았습니다. 보수적인 침례교 지역의 교육기관에서도 진화를 큰 저항 없이 가르쳤습니다.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이 본격적으로 진화론을 반대하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부터였습니다. 1920년대의 미국은 강경 보수파 정권이 집권하면서 종교계에서도 보수적 근본주의 운동이 크게 일던 때였습니다. 정치적 후원을 등에 업은 근본주의자들은 교과서 출판사들과 지역 교육위원회에 압력을 넣었고 실제로 많은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사라지는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때 미국의 과학 교육은 상당부분 퇴보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과학의 반격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시작되었습니다. 1957년, 냉전 시대의 적대국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 위성을 발사하자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자기 나라의 과학 기술이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 깨닫고 과학 연구와 과학교육에 큰돈을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그 현장에 신다윈주의를 반영한 생물 교과서들이 배포되고 미국의 대중도 과학을 점점 더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생물 교과서가 근본주의자들을 다시 잠에서 깨웠습니다. 예전처럼 든든한 정치적 후원을 받을 수 없었던 근본주의자들은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창조연구협회와 창조연구재단이 이후 창조과학의 전신이 됩니다. 단체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창조주의 이념이 공교육에 포함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송을 걸어도 근본주의자들의 요구는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신화는 과학이 아닌 종교이기에 미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 즉 정부가 어느 한 종교만을 편들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1968년에는 진화론을 반대하는 낡은 법률들이 모두 무효처분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헌법은 근본주의자들에게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큰 산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근본주의자 법률가인 웬델 버드의 지휘하에 새로운 전략을 짰습니다. 종교라서 법률에 가로막힌다면 종교를 과학처럼 꾸미면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지질설, 젊은지구설 등 신화를 과학으로 둔갑시킨 초현실적인 주장들, 진화론이 오류투성이 이론에 불과하다는 가짜 주장들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과학적 창조론이라 부르고 과학 수업에서 진화론과 균등한 시간을 들여 가르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른바 창조과학의 탄생이었습니다. 창조과학은 다시 한 번 큰 산 오르기에 도전했습니다. 1982년 1월 5일, 윌리엄 오버턴 판사는 창조 과학과 관련된 소송 사건에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창조과학은 단연코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합법적인 교육적 가치가 없다." 창조주의자들의 속셈을 꿰뚫어 본 미국 법원은 창조과학을 명백한 사이비과학으로 판정한 것입니다. 창조과학은 이후 몇 차례 법원 판결에서도 매번 무릎을 꿇었습니다. 창조과학의 장점은 법원 판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대의를 밀어붙일 의지와 시간과 돈줄이 넘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대신 가짜 뉴스를 양산해서 신도들과 대중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자 발행, 세미나, 강연 등으로 과학을 왜곡하고 진화론을 공격하고 진화론 학자들의 말을 악의적으로 인용하는 일에 시간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때 양산된 가짜 뉴스가 아직까지 효과를 발휘할 정도인데 대표적인 예가 중간단계 화석입니다. 종과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단계 화석 증거들이 1950년대부터 발견되기 시작했고 90년대 이후로는 그 수가 괄목할 만큼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단계 화석이 없다는 낡은 주장들이 아직까지 진화론 반박 증거로 쓰이고 있습니다. 선동 효과가 대중들에게 점점 먹혀들자 창조과학은 또다시 헌법수정에 도전했습니다.
창조과학이 종교적 색채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예 종교의 색깔을 지워버리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적설계론입니다. 지적설계론이란 인간, 동물, 우주와 같이 복잡하고 완벽한 자연계가 만들어지려면 분명 지적인 설계자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지적설계론의 핵심은 설계자를 신이나 창조주로 명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계자는 우주의 어떤 존재, 심지어 외계인까지 될 수 있기에 언뜻 보면 과학의 범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적설계론이 주장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창조과학의 주장과 똑같고, 지적설계자는 결국 설계자 하나님으로 귀결됩니다. 한 마디로 지적설계론은 창조과학의 버전 2, 혹은 헌법수정을 위한 교묘한 위장술에 불과합니다.
지적설계론의 주장대로라면 설계자의 능력은 완벽해야 하며 그에 따라 자연계 만물은 완벽한 설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연에는 조악한 설계, 땜질된 설계를 보여주는 예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깜깜한 동굴에 사는 어류와 도롱뇽류에게는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 눈의 흔적 기관이 있습니다. 설계 오류입니다. 포유류의 되돌이후두신경은 쓸데없이 길어서 심장 근처의 대동맥을 감아나간 다음 후두로 되돌아 온 뒤에야 말을 하게 됩니다. 설계 낭비입니다. 사람이야말로 불완전한 설계의 좋은 예입니다.
우리의 등과 발과 무릎은 직립보행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인간에게도 꼬리뼈, 편도, 막창자꼬리 같은 흔적 기관이 많습니다. 게다가 남자에게 왜 젖꼭지가 설계되었을까요? 2005년에 미국에서 지적설계론과 관련된 중요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최초의 연방법원 판결이라서 결과에 따라 지적설계론이 법률적 근거를 얻을 수도 있었기에 많은 관심이 모아진 판결이었습니다. 성실한 기독교 신자인 존스 판사는 139쪽에 달하는 긴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지적설계론이라는 주장은 숨이 멎을 만큼 아둔한 것임이 명백하다.
지적설계론 측에서 주장하는 비종교적인 목적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속임수이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공립학교 교실에서 종교를 장려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창조주의자들은 법적 패배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지적설계론에 대해선 숨이 멎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고 우주론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다른 영상으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미국은 모든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창조주의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입니다.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의 지식층은 그런 미국을 조롱조로 대합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도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의 창조과학을 그대로 수입한 한국의 일부 개신교 단체들은 끊임없는 이단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신자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미국의 창조과학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압력으로 2012년에는 한국의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주요 내용이 빠질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이 네이처지에 실리는 바람에 한국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습니다.
사실 어떤 종교 단체가 자신들의 신화를 과학으로 포장한다 해도 그러려니 하면 그만입니다. 어떨 땐 작은 웃음을 주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자신들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을 공격하고 과학이론을 왜곡한다면 웃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고생물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는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가르칩니다. 중간단계 화석은 없으며, 공룡은 인류와 함께 살았고, 지구 나이는 6000살이라는 사이비과학을 주입시킵니다.
교묘한 반박 자료와 악의적인 인용으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이처럼 과학문명과 지성사회를 뒤흔드는 일을 당당히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셔머는 그 이유중 하나가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이 종교에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 특히 진화론이 종교에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 그리고 진화론이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트리고 자연계에서 인간의 우월적 지위를 격하시킨다는 두려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이야말로 종교적 구원에 다가가는 일이라 믿습니다. 자신들의 영혼이 천국에 가기 위해선 나머지 것들, 즉 과학문명과 지성사회까지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생의 대상에는 기독교 신앙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찌감치 이렇게 말했습니다.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 집착하면 신앙을 해치게 될 것이다." 이상 북툰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창조론의 과학이야기 포스팅 마칩니다.